폐교현황, 위도초등학교 상왕분교
상왕등리 산 143
대지 198㎡
대장가격 223천원
부안군 위도면 상왕등리 143번지
부안교육지원청과의 거리 78km
1962.11.24. 상왕분교 설립인가
1964.03.14. 상왕등분교장 개교
1992.02.28. 위도초등학교와 통폐합
학생수가 최고일 때 1976.02.09. 29명(남 12, 여 17)
폐교 원인-어획량이 줄어 인구 감소
위도의 서북쪽에 있다. 하왕등도와 함께 왕등도라고도 한다. 왕이 오른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이후 간재 전우 선생이 '산이 높다하여 왕등도라 하였다고 한다. 상왕등도가 하왕등도보다 좀더 위쪽에 자리하기 때문에 '웃왕등도' 또는 한자음인 상왕등도라고도 한다.(출처:2020년 위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일제강점기 전남 영광군 위도면 치도리에는 1930년 위도보통학교가 개교했다.
1945년 해방 후 위도면 치도 출신 서용진, 서동진, 서석진 삼형제가 본 섬에 와서 주민들이 마련해 준 민가에서 주간에는 30여명 아동을 공부했고 야간에는 성인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폭풍으로 가교사인 초가집이 무너져 배울 장소가 없어져 바닷가 암석 위에서 또는 헛간에서 공부했다.
전남 영광군은 상왕등도에 1960년 3월 12일 초가 1동을 마련하여 위도국민학교 상왕등분교를 인가했다.
낙후된 학교 시설을 타개하기 위하여 주민 노병렬(盧炳烈) 씨가 대지 500㎡를 희사하고 기성회장 노봉상(盧奉相)씨와 주민들은 생업을 뒤로 미루고 신축공사 대지 평탄작업을 했다. 1963년 부안군에 편입된 후 행정관서에 강력히 요구하여 1964년 3월 30일 교사 1동(교실 28.2평, 숙직실 7평)이 준공되어 다소나마 학교의 면모를 갖추 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1986년 3월 1일 염소 15마리로 염소장학회를 설립하여 중학교 진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한편, 구한말 유학자 간재 전우 선생은 1908년 9월경 상왕등에 입도했다. 선생이 바다로 나간 배경에 대해 [논어 공야장 제5편 제6장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공자왈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간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지만, 혹시 공자 선생의 고향인 곡부와 가까운 서해안 섬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1910년 제자들은 선생의 상왕등도 강학소에 求仁庵(일명 衛陽書院)을 세웠다. 고창 출신 현곡 류영선은 1904년 12세 때 간재 선생을 만나 1905년 부안 줄포 목중리부터 1908년 상왕등도, 신시도, 계화도까지 함께 했다. 현곡은 1941년 2월 상왕등도에 있는 간재 선생 유허비 비문을 지었다.
1990년 상왕등분교 현황 |
1981.06.03 왕등도 학생들이 위도 본교에 초청되어 1박 2일 교육을 받았다. |
1988.07.07 상왕등 분교 수업(송경식 교사, 1학년 서봉석, 2학년 노선옥, 3학년 서갑순) |
1988.05.08 상왕등 분교 어린이날, 어버이날 기념식( 뒤에 학교 건물이 보인다) |
1988.05.08 상왕등 분교 어버이날 기념식에 초청된 상하왕등도 60세 이상 어르신 |
1988.05.08 상왕등 분교 어버이날 학부모 줄다리기 |
1989.05.08 상왕등 분교 어버이날 기념식, 3학년 노선옥 어버이 은혜 독창 |
1991년 3월 현재 상왕등 분교 신축 교사 |
1989년 상왕등 마을 |
상왕등도 간재 선생 유허비, 간재학회 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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