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청각장애 안영회교수의 첫수업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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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청각장애 안영회교수의 첫수업 풍경

by 정진한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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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5.03.10 16:04:12]
3월 둘째주는 대학 캠퍼스가 가장 북적이는 시기다. 시간표를 손에 쥐고 강의실 찾으러 계단을 오르내리는 대학생들. 수강신청 조정이 끝나고 새해 첫 수업이 시작되는 때이다.


충북 천안 나사렛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겨우내 비어있던 강의실은 수업 시작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왁자지껄한 강의실 창문 너머 봄햇살이 따사롭다. 앞문이 천천히 열리고 옆구리에 책을 낀 ‘교수님’이 들어온다. 강의실은 일순 조용해지고.

“우와~ 모두 슈화를 배우러 온 학섕들인가요?” 빈자리 없이 가득찬 강의실을 보고 안영회 교수(39·여)가 큰 소리로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런데… 발음이 조금 이상하다. 옆 친구와 눈을 마주치며 의아해하는 학생들. “지금 ‘외국인인가’ 생각했죠?”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띤 안교수는 “제가 청각장애가 있어 발음이 좀 이상할 거예요.” 설명을 덧붙인다.

“혹시 이 중에 수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 안교수의 질문에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어떡하나, 아예 모르면 내가 대화나누기 힘든데…. 혹시 다른 수업으로 바꿀 수는 없나요?”
웅성웅성거리던 학생들 틈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한 남학생의 씩씩한 외침.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수화를 배우고 싶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이내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인다.

“좋아요. 제가 질문을 입모양만으로 못 알아들을 경우엔 종이에 적거나, 옆의 수화 잘하는 친구에게 통역을 부탁해 주세요.” 안교수는 싱긋 웃더니 모두 가장 궁금해할 성적 산출방법을 설명한다. 출석이 20점, 시험이 30점, 세 번 지각은 한 번 결석으로 치고, 한번 결석할 때마다 2점 감점….

“리포트는 독후평으로 대체하는데 많이도 말고 간단하게 A4용지 4장만 쓰세요.” 설명을 듣고 있던 학생들이 리포트 대목에 이르러 푸념을 늘어놓는다. “어휴, ‘간단한 게’ 4장이야?”
그때 강의실 어디선가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퍼진다. 교수의 사각지대에 앉아있던 학생이 여유롭게 휴대폰을 열었다 닫는다. “대학생이 리포트 4장이 뭐가 많아요. 아, 그리고 휴대폰은 수업시간에 켜두면 안되죠?” 소리를 못듣는다더니 강의실 상황을 신기하게도 다 꿰뚫어보는 교수가 신기한지 학생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출석점검. “태권도학과 XXX군 왔죠? 다음에 호신술 좀 가르쳐줘요. 소리가 안들려서 밤에 뒤에 누가 다가와도 몰라요.” “경찰행정학과 XXX군! 경찰들도 수화를 배워야 청각장애인이 경찰서에 왔을 때 올바르게 시시비비를 가려낼 수 있답니다.” 안교수는 한명 한명에게 애정어린 인사말을 건넨다.

첫 수업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같은 간단한 수화 배우기로 끝났다.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든다. “교수님, 뒷자리라서 교수님 수화 손짓이 잘 안보이는데 어떡하죠?” 안보이면 안경을 쓰라는 친구들의 짓궂은 야유에도 “누구 수화 통역 좀 해줘!” 굴하지 않는다. 한 학생이 수화 통역을 해주자 안교수는 “하하, 다음부턴 앞자리에 앉도록 하세요.” 명쾌하게(?) 해답을 내려준다.



질문에 성공한 학생은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손을 번쩍 든다. “교수님, 저희는 괜찮지만 교수님은 저희가 수화를 몰라서 강의하기 답답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안교수는 기특한 질문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미국인과, 영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이 만나면 함께 배우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가죠? 우리도 그렇게 해나가요.”
수업이 끝났다. 안교수는 언제나 학생들이 나간 후 제일 늦게 교실을 나선다. 혹시라도 귀가 안들리는 자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질문을 포기한 학생들이 있었을까봐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을 보면 저도 덩달아 씩씩해져요. 이 중에서 미래의 수화통역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방금 배운 간단한 수화를 반복하며 다음 강의실로 이동하는 학생들을 보니, 안교수의 수업은 올해도 행복의 파도로 넘실댈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안영회교수의 꿈 “아름다운 손짓 모두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소리를 못 듣다보니 보는 능력은 남들의 2~3배예요. 그래서 수업시간에도 학생들 표정이 하나하나 눈에 팍팍 들어오죠.” 리포트 분량이 많다는 학생들의 푸념도,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도, 그에 따른 학생들의 민감한 표정 변화로 알아챈 모양이다.

안영회 교수가 청각을 잃은 건 4살때. 고열을 내리기 위해 맞은 마이신이 잘못된 탓이었다. 안교수가 처음 수화를 배운 건 11년전인 28살 무렵이다. 그럼 수화를 배우기 전 소리를 잃은 24년 동안은 어떻게 지냈을까.

“입모양만 보고 의사소통을 했어요. 초·중·고교도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를 나왔는데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 입만 쳐다봤죠.” 선생님이 등 돌리고 칠판에 쓰면서 설명할 때는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입모양만 보고 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탁소’와 ‘사당동’을 발음해 보세요. 입모양이 비슷하죠?” 게다가 입이 작은 사람, 사투리를 쓰는 사람, 주걱턱인 사람…. 경우마다 너무 달랐다. 그래서 11년 전 처음 수화를 접했을 때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영어도, 불어도 못하는데 그래도 수화 하나 배우면 이제 외국 청각장애인과는 대화가 가능하겠구나 신났었는데, 글쎄 미국 수화, 프랑스 수화 나라마다 다 다른 거 아세요?” 안교수는 깔깔대며 웃었다. 참 쾌활한 성격이다.

안교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잡지 ‘아름다운 손짓’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강의로 바쁜 중에도 여기저기 취재하러 다니며 자비로 발행한다. 지난해에는 장애인의 인권신장 노력을 평가받아 장애인단체에서 상도 받았다. “수화를 초등교육부터 필수교과로 지정한 나라도 많아요. 그에 비해 우린 청각장애인들이 의사소통을 하기가 너무 어려운 구조이죠. 함께 이해하며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 수화에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2년동안 수화를 가르쳐온 안교수의 바람이다.

〈천안|글 정유진기자 sogun77@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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