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생님, 그리고 안내견… 공부보다 더 깊은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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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뉴스통합

두 선생님, 그리고 안내견… 공부보다 더 깊은 가르침

by 정진한 2012.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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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생님, 그리고 안내견… 공부보다 더 깊은 가르침

맹인학교 수석 다투던 12년지기, 일반 中 교사 임용
목소리로 아이들을 기억 - 학생 명부 점자 노트북에 연결… 150명 이름 전부 외워, 복도에서 마주치면 "저 ○○예요" 먼저 말하게 해
지식보다 깊은 울림 - 학생들 "선생님 수업은 특별해"… "선생님 오신 후아이들 인성 교육에 큰 도움"… 학부모들 전화 줄이어

3일 서울 도봉구 창동 창북중학교 1학년 4반 교실. 국어 수업 때 한 학생이 뒤를 돌아보며 소곤거리자 강신혜(24) 교사가 "어, 거기 ○○이 잡담하지 말고…"라고 콕 집어 지적했다.

지난달 이 학교 국어 선생으로 부임한 강 교사는 시각장애 1급. 그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빛과 흐릿한 사물의 실루엣 정도다. 학교에 부임한 지 한 달. 강 교사는 귀로 듣는 세계에서 학생들과 교감(交感)하고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아이들 목소리엔 표정이 있어요. '네'라는 대답 한 마디라도 150명 다 다르거든요. 목소리가 튀고 개성 있는 학생일수록 빨리 외워져요."

첫 도전은 '출석부'를 머릿속에 심는 일이었다. 그는 학생들과의 첫 만남에서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싶었다. 첫 수업을 이틀 앞두고 파일로 받아 놓은 학생명부를 집으로 가져와 점자(點字) 노트북에 연결했다. 어머니 앞에서 점자화(化)된 키보드를 손으로 훑어가며 5개 반 학생 150여명의 이름을 반복해 읽었다.

수업에 들어가서는 "앞으로 1년 동안은 이 자리 그대로 앉는 거야"하고 학생들에게 부탁도 했다. 처음 한 달은 출석을 부르며 아이들이 "네"하고 대답할 때마다 이름과 목소리를 연결시켰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선생님 저 ○○예요'라고 먼저 말하도록 했어요. 변성기가 오지 않아 대부분 미성(美聲)이라 어렵긴 했어요. 목소리 톤을 듣고 밝은 아이, 반항적일 것 같은 아이, 순할 것 같은 아이를 이미지로 기억한 게 도움이 됐죠."

같은 날 점심시간.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중학교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쉬는 시간을 틈타 교실에 앉아 있는 김경민(24) 교사 곁으로 학생들이 몰렸다.

1학년 이도영(13)군이 김 교사 옆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이란 목소리만 듣고도 김 교사는 "그래, 도영이구나" 하고 이름을 불렀다. 이군이 "선생님, 미담이 밥 먹었어요?"하고 묻자 낮잠을 자려던 맹인 안내견이 미담이가 몸을 일으켜 꼬리를 흔들었다.

김 교사와 강 교사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서 일반학교에 임용된 교사다. 영어를 가르치는 김 교사는 강 교사보다 1년 앞서 교단에 섰다. 김 교사는 작년 숙명여대 문과대를 수석으로 조기 졸업했고, 강 교사는 올해 상명대 국어교육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나란히 일반학교 선생님이 됐다. 김 교사는 "장애인 전체의 이미지를 생각해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강 교사와 김 교사는 초·중·고교 동창이다. 1995년 서울맹학교에 함께 입학했고, 12년 동안 함께 공부했다. 한 학년에 30여명이 전부인 학교에서 둘은 항상 1등 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했다. 이들은 교내 도서관에 비치된 점자책을 모두 읽었다. 이렇게 회상했다. "남들은 책을 오래 보면 '눈이 빠질 것 같다'고 하잖아요. 전 점자를 하도 만져서 팔이 빠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홀로 노력해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다. 이들을 세상과 연결해준 사회적 토대가 있었다. 일반 문서를 점자화하는 점자 노트북, 출석부 체크 등 행정업무를 돕는 보조교사, 길을 안내해 주는 맹인 안내견 '미담(6·암컷)'과 '미래(6·수컷)'. 2007년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가 분양해준 미담이와 미래는 같은 날 한 어미가 낳은 안내견이다. 두 친구는 지난 6년 동안 학교 길과 출근 길을 안내했고, 교실에도 동행해 조용히 학생들과 수업을 함께한다.

창북중 1학년 이민우(13)군은 "선생님 수업은 특별한 것 같아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들이 느끼는 '특별함'이란 무엇일까? 장애가 있어도 노력하면 우뚝 설 수 있는 사회라는 것? 사람은 말 못하는 동물에게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 김원기 인왕중 교장과 김영희 창북중 교장은 "선생님 부임 후 '아이들이 공부만이 아니라 인성(人性) 교육에서 긍정적인 배움을 얻는 것 같다'는 학부모의 전화를 여러 차례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 도봉구 창북중학교에서 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교사 강신혜씨(왼쪽)와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중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교사 김경민씨(오른쪽). 두 사람은 1995년 서울맹학교에 나란히 입학해 12년 동안 초·중·고교를 함께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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