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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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늙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by 정진한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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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까?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역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젊은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노파를 봤다. 

불쌍한 표정을 짓지만 이상하게도 그 얼굴에서 젊은 날의 어떤 모습들이 느껴졌다. 

얼굴에 그 과거가 그림으로 잠재해 있기 때문인가? 
며칠 후 다시 그 자리를 지나가다가 허공을 가르는 그 노파의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저 년이 나보고 젊어서 뭐했길래 이렇게 사느냐고 그래요. 야 이년아, 너도 나 같이 되라.”

노파의 저주가 뼈에 사무치는 것 같았다. 
그 노파는 왜 늙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구걸을 하고 있을까. 

젊어서 노후의 준비를 못하고 인생의 절벽 밑바닥에 떨어진 노인들이 많다.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인기 있던 가수가 내게 노숙자 합숙소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내가 그 시설을 후원하는 걸 알고 부탁한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됐을까?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원로가수 현인씨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었다.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이 앵콜을 요구하면서 나가지 않는 바람에 같은 곡을 아홉번이나 부른 적도 있어요.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를 쳤었죠. 

그렇지만 인기라는 건 허망한 거죠. 
세월이 가니까 잊혀졌어요. 
미국으로 갔어요. 식당을 했지만 실패하고 아내와도 헤어졌어요. 
그리고 노인이 됐어요.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요.”

늙고 가난한 것만이 불행의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의과대학장을 한 저명한 칠십대 노의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돈과 명예가 있다고 노후가 행복한가요? 그런 거 다 소용없어요. 
하루라도 따뜻하게 살고 싶어요. 
저는 가난한 의대생이었어요. 
부자 집 딸과 결혼했죠. 처가에서 작은 의원을 차려줬어요. 
매일 번 돈을 아내에게 바쳤죠. 아내도 의사였죠. 저에게 밥 한번 따뜻하게 해 준 적이 없어요. 

제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와도 역할이 식모였어요. 
어느 혹독하게 춥던 겨울날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찬물로 며느리의 빨래를 하는 걸 봤어요. 
가난이 죄였죠. 
아내는 제가 번 돈으로 땅과 건물을 샀는데 칠십년대 부동산 경기를 타고 엄청나게 값이 올랐죠. 

난 돈이 목적이 아니었어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내 분야에서 권위자가 되려고 곁눈질을 하지 않고 살아왔죠. 
나는 노력해서 대학병원장이 됐어요.”

그는 모든 걸 다 가진 셈이었다. 
칠십대 노인이 된 그가 어느 날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가출을 했다. 

병원장자리도 그만두고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내게 그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느 날 단골로 다니던 한식당에서였어요. 수더분해 보이는 주인여자가 생선의 뼈를 발라주고 국이 식을까봐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울컥해졌어요. 

그리고 따뜻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산 건 산 게 아니었어요. 그런 건 삶이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집을 나와 작은 방을 하나 얻었죠. 
저녁이면 내 방으로 돌아와 빨래판에 팬티와 런닝셔츠를 놓고 빨래 비누를 개서 문댔어요. 
노년에 비로서 평안을 찾은 것 같아요.” 

그를 보면서 노년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았다.

아직 젊을 때 늦기 전에 노년의 삶을 미리 그려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고 설계를 해보는 것이다. 노년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삶은 자신만 힘든 게 아니라 주위 사람과 사회까지도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내남없이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젊음이 어느 순간 증발해 버리고 거울 속에서 자신의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보는 게 삶의 현실이다. 
나는 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수시로 음미해 왔다. 

그건 비관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잘 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나의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됐고 현재가 축적되어 미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주변 선배들에게 육십오세 이후 죽을 때까지 얼마의 돈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수시로 물어보았다.

나의 기준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친구나 이웃에게 정을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 다음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취미가 겹쳐진 일이었다. 

나는 그걸 글쓰기와 독서로 삼았다. 
낮도 아름답지만 밤도 고요하고 안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곱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엄 상익 변호사 

산울림-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https://youtu.be/weucc2MFyfI?si=5nB_wr5ozDKKyC7O

 

#풍경1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102세가 됐습니다. 다들 ‘100세 시대’라지만, 지금 100세를 넘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소 조심스러웠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다 연세가 있으셔서 ‘혹시라도’ 싶어 인터뷰 자리가 걱정되더군요.

이달 초 커피숍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의외로 의연했습니다. 뭐랄까요. 1세기를 송두리째 관통한 사람의 ‘굵직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와 함께 말입니다. 지난 인터뷰에서는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행복’이란 두 글자를 물었습니다. 모든 이의 삶에서 화두가 되는 키워드이니까요. ‘100년 넘게 살아봤더니 다른 게 행복이 아니더라. 바로 이게 행복이더라.’ 그런 식의 답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풍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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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찾습니다, 행복. 어떡하면 찾을 수 있습니까.  
“지금껏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아무리 행복해지고 싶어도 행복해지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누구입니까.    
“크게 보면 두 부류입니다. 우선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으니까요. 가령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하게 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물건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돈이나 권력, 혹은 명예를 좇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행복을 찾습니다.  
“솔직히 거기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돈과 권력, 명예욕은 기본적으로 소유욕입니다. 그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이 마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항상 허기진 채로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하려면 꼭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만족’입니다.”    
‘만족’을 알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정신적 가치가 있는 사람은 만족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더군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명예나 권력이나 재산을 거머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불행해지더군요. 명예와 권력, 재산으로 인해 오히려 불행해지고 말더군요. 지금 우리 주위에도 그러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실감했습니다. 김형석 교수의 메시지는 참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언뜻 들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립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행간을 곰곰이 씹다 보면 확 달라집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국물이 우러납니다. 그건 100년의 삶, 100년의 안목으로 우려낸 삶에 대한 묵직한 통찰이겠지요.

#풍경3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할 수 없는 삶. 아, 그건 정말 비극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 걸까요. 내가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일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부류를 물었습니다. 건너고 싶어도 행복의 강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 그게 누구인지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뜻밖의 진단이었습니다. 다들 자신을 챙깁니다. 나 자신을 챙기고, 내 이익을 챙깁니다. 그걸 위해 삽니다. 왜냐고요? 그래야 내가 행복해지니까요. 그런데 김형석 교수는 이기주의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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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와 행복, 왜 공존이 불가능합니까.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격을 못 가집니다. 인격이 뭔가요. 그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끝에 김형석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하나 꺼냈습니다.

“제가 연세대 교수로 갈 때 몹시 가난했어요.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오면 무척 좋아했어요. 동료 교수들도 다들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고생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한 겁니다. 그건 교육자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행복하질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행복은 공동체 의식이지, 단독자인 나만을 위한 게 행복이 아니더군요.”

김 교수는 자기가 먼저 큰 그릇이 되어야 큰 행복을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풍경4

김형석 교수는 최근 지방 출장차 김포공항에 갔습니다. 예약자들에게 발권 표를 다 나눠주는데 김 교수만 빠졌습니다. 문의를 했더니 항공사 직원이 “이상하다”며 급히 매니저를 불렀습니다. 달려온 매니저가 김 교수에게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컴퓨터상에 나이가 ‘1살’이라고 떴습니다. 1920년생인 김 교수는 올해 만으로 101세입니다. 컴퓨터가 두 자리 숫자만 읽게끔 설정돼 있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 비행기만 930번 이상 탔어요. 그런데 직원이 보니 1살짜리가 930번 비행기를 탄 겁니다.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이상하죠. 저도 나이 생각이 없어져요. 내 나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1살이라고 하니 올해는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살려고요. 하하”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다들 100세 인생을 기대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연세대 교수로 처음 갈 때 30대 중반이었어요. 그때는 환갑이 되고 정년이 되면 내 인생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을 두 단계로 봤어요. 30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30년은 직장에서 일한다. 그럼 인생이 끝난다.”
막상 살아보니 어땠습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랬습니다.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세부터입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60부터 온다.”
그럼 60대 이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60을 넘어 90까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회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럼 90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되는 사람도 있더군요. 주로 건강 때문입니다. 의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혈압, 당뇨, 치매는 주로 60세 이후에 찾아옵니다. 그걸 60, 70, 80세가 돼서 관리하려고 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러니까 50세부터 잘 관리하면 됩니다. 그럼 90까지는 다 간다고 합니다. 90세까지는 행복하고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의술이 발전하니까 40~50년 후에는 100세까지도 다들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풍경5

대화를 나눌수록 놀랍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지팡이를 짚지 않습니다. 제가 놀란 건 육체적 건강 때문만이 아닙니다. 100세 넘는 연세에도 정신력과 기억력, 사고력과 판단력이 놀랍습니다. 유연하고 열린 사고 역시 젊은이들 못지않습니다. ‘100세의 건강’ 못지 않게 ‘100세의 정신’도 궁금하더군요.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그때는 퇴직하고 한참이나 지난 뒤입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강연차 지방에 갈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 거기서 지방 유지들을 만납니다. 장관 지낸 사람, 교수 지낸 사람들도 만납니다.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나보다 정신이 늙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장관직 끝내고, 정년퇴직하고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도 빨리 늙습니다.”
일과 공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꼭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공부가 따로 있나요. 독서 하는 거죠. 취미 활동하는 거고요. 취미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100년을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있고, 건강은 일을 위해서 있습니다. 내 친구 중에 누가 가장 건강하냐. 같은 나이에 일이나 독서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가장 건강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겨울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참, 값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0세의 언덕’에서 우리들 각자에게 던져주는 지혜의 알갱이들이 말입니다. 누구에게는 30년 뒤, 누구에게는 50년 뒤, 또 누구에게는 70년 뒤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모두에게 오게 될 그 언덕에, 미리 서 볼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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