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선교를 위한 교회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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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선교를 위한 교회의 태도

by 정진한 200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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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선교를 위한 교회의 태도

 

  장애인에 대해서 목회자가 그리고,교회의 신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곧 장애인이 그 교회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된다. 또한 이것은 교회의 활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지정하는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교회가 가져야 하는 인식과 활동에 대해서 알아본다.

1.목회자와 장애인 

  목회는 “영혼을 돌보는 일” 이라고 정의된다. 인간 영혼의 보살핌이 곧 목회이고, 이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곧 목회자이다. 목사(Pastor)란 말은 헬라어 ‘포이멘’이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그것은 ‘보호한다’라는 뜻이며 근본적으로는 ‘목자’(Shepherd)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에서는 목자의 의미를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양을 돌보는 자의 의미와, 백성을 돌보는자의 의미이다.구약 시대에는 백성을 다스리는 모든 왕을 목자로 생각하였고,미래에 나타날 기름 부은 왕, 곧 그리스도는 특별한 목자로 알려졌다. 신약에서의 목자의 상은 예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불렀고, 베드로전서 5장 4절에서는 ‘목자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예수의 목자의 과업은 첫째 양들을 아끼며 그들에 대해 성실하고 끊임없는 관심을 갖는 것이였다. 둘째로 목자는 앞장을 서서 양들을 인도하며, 셋째는 양들을 위해 죽기까지 희생해야 한다. 넷째로 목자는 울타리 밖에 있는 양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다섯째로 목자는 자기의 정신적 자세에 대해 성실하고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목자가 양들을 돌본다는 것은 양떼의 필요한 것을 알아 채워주는 섬김이 일이다. 초대 교회의 목자상은 예수님을 따르며 그를 증거하고 그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섬기는 일이였다.  

  ‘목회’라는 말에서 파생된 또 다른 단어는 ‘디아코노스’(diakonos)-봉사자,집사, ‘레이투로고스’(leitourgos)-일꾼,봉사자, ‘후페르테스’(huperetes)-일꾼, 보조자 등이 있는데 모두가 목자로서 목회자 교역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에서, 우리는 역시 목회자가 세상을 섬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목회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 한다. 장애인 선교는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 선교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담당 해야 할 하나의 커다란 숙제요 마땅히 수행되어야 할 사명으로 인식 되어야 한다. 목회가가 만일 신체 장애자들이 갈망하는 것에 대해서 창의성 있게 관심을 가지기만 한다면, 불구가 된 사람들은 결코 모든 사람이 방관하게 되는 내버려진 교인들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도록 하는데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실제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교회에 나올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목회자의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장애인 교회는 약 100여개가 되며, 그 가운데 맹인교회는  15-20개, 농아인 교회는 50-60개, 지체 장애자 교회는 15-20개 정도가 된다. 일반 개교회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 부서를 두거나 시설을 개조하여 장애인들이 활동하도록한 교회들이 있는데, 소망교회(곽선희), 남서울교회(조성주), 서울영동교회(김낙준), 충현교회(이종윤)등은 정신지체인을 위한  특수 부서를 교회에 두고  있다. 그리고, 신일교회(이광선), 중앙성결교회(이만신), 아현감리교회(김지길), 충현교회(이종윤),안동서부교회(김원진) 등은 농아인을 위한 부서를 두고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영락교회와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농아인을 위한 대규모의 선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 교회로 알려져 있다. 장애자를 단지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들에게 구호품을 던져주는 것을 장애인 선교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 교역자 수준이다. 그러나, 그들은 특수 부서를 위한 선교사를 훈련시키거나 사회사업가를 채용해서 실용적인 도움과 선교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 목회자는, 장애자를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도  목회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많은 말보다 돌봄과 관심을 표명해야 하며, 그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에 동참할 수 있고, 그들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목회자는 장애인 교인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목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

2.교회와 장애인

  (1)교회의 인식
  일부 교회에는 간혹 지체 장애인들이 출석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장애인, 감히 교회에 참석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장애인에 대해 얼마의 배려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속엔 한 두 신자가 모여서, 감사한 생활을 하며, 나아가 가르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몸으로서 교회를 세워 나간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음을 살펴 보았다.

  1981년은 UN에서 정한 신체 장애자의 해였고, 이에 호응한 세계기독교연합과 세계 각 나라의 교회들은 신체장애자를 돕는 일을 펼치고 있다. 현재의 한국 교회는 교회건축과 교세의 확장을 위해서 전 교회의 인적, 재정적 자원을 총 경주하고 있다. 교회는 교회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세계를 위해서도 존재해야 한다. 교회의 선교는 교회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밖에 있다. 교회는 교회밖의 사회를 위한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소외된 신체 장애자가 수없이 많이 있다. ‘한국인구 보건연구원’이나 ‘한국 겔럽’ 그리고 ‘보건 사회부’의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장애자의 비율이 높아져 이제는 전체 인구의 10 %까지 이른다고 한다. 우리의 있는 곳에서 열명 중의 한 명은 장애자가 된다는 말이다. 이제 교회는 기독교의 참 사랑과,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장애 상태와 관계없이 보호 받을 수 있고, 융화 될 수 있는 교회로 장애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1971년 W.C.C에서는 교회가 장애자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어야 하는 것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1. 교회는 신체 장애자나 병든 사람을 우선 이해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로 부터 오는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어서, 두려움을 사랑과 받아들임으로 대치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 그들의 인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그들을 교회생활속에 통합하는 일을 모색해야 한다.
  3. 그들은 사회안으로 자유스럽게  끌어 들이려는 모든 운동을 적극 후원해야  한다.
  4. 새로운 형태의 격리나 소외 현상을 발견해 내서 문제로 다루도록 늘 연구해야 한다.
  5. 장애자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위해 권리를 찾고자 할 때 그 필요를 인정해야 한다.
  6. 교회는 활동적이고 유능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뭉쳐서 기득권을 누림으로  얼마나 신체 장애자와 가난한  사람을 그 축에도 끼지 못하게 했는가를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교회는 장애자를 대하는 것이 진실로 하늘 나라의 본연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명백히 보여주는 것임을 확인하기 위해, 교회의 하는 일을 재 음미해 보아야 한다.
  교회들은 참으로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장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인간 가족을 위한 필요 불가결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사회가 장애자를 고립시키고 있는 사실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거나, 장애인들이 사회 생활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계속 거부한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참된 인간성을 증거 할 수도 성취할 수도 없다. 장애자 문제에 대해 교회는 그 나름 대로의 사회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생명의 종교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허덕이는 장애자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2)교회의 여건 조성
  장애인에게 있어서 개인 신앙 생활이나 교회 적응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다. 교회의 문턱은 높아 휠체어가 교회에 들어갈 수 없다. 맹인이 교회에 들어가면 색다른 눈빛으로 인해, 그들만이 모이는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농아인들은 교회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교회는 그들을 맞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교회에서도 장애인들이 한 개체로서 인격적인 대우와 존경을 받으면서 공동체안에서 생존할 권리가 있지만, 아무런 제도적 보장이 없으면, 단지 동정의 대상만 되어 사회 속에 그냥 버려지게 된다. 장애자를 적극적으로 전도하지도 않을 뿐더러, 교회를 찾아간 장애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포용할 자세도 부족하다.
   이런 우리의 현실에 비해, 미국의 몇 교회에서는 장애자가 교회 활동과 간접적인 사역에 동참하는 일을 볼 수 있다. 시카고의 어떤 지역에서는 신체 장애자들을 한달에 한번씩 교회에 모은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점검하고 초청해서 교회에 모았는데, 이것은 곧 예배와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곧 주위 여러 교회의 관심 속에서 여러 교회로 번져갔다. 미국의 목회지(THE CLERGY JOURNAL)에서는 장애자들을 위한 옥외 예배의 모습을 소개했다. 교회는 늘 집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장애자들을 차에 태우고 교회 주변 주차장에 모은다. 그리고, 그들은 차창 위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목사가 지붕위에서 하는 설교를 듣는다.
 
  이렇게 모이는 그들은 절기마다 성찬식도 거행하며 뜰에서 교회가 제공하는 다과를 나누며 나눔의 시간을 갖는 데 의외로 교인의 수는 놀랍게 증가하였다. 라디오를 통한 선교 방송도 장애자의 삶을 부요하게 한다. 교회는  일정시간에 방송을 통한 성찬식을 거행하고 교회의 장로들은 각 곳에서 장애자들과 성찬식을 거행한다. 이것이  어려울 때는 카세트 녹음기나 비디오 테이프를 이용해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포틀랜드의 한 교회는 장애자를 위한 경사길을 갖추어 휠체어를 탄 예배자를 들어가게 쉽게 하였다. 화장실도 그들이 이용하기 쉽게 개조하였다. 이것이 어려운 교회는 폐쇄 TV 시설을 이용, 건물의 바닥에서 장애자들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하고,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목회에 동참하는 장애자도 있다.어떤 장애자는 자기의 집을 개방해 집회의 장소로 제공하고, 그곳에서 교회의 사업도 계획하고 주보도 발간하여 교회를 돕는다. 목회자를 돕기 위해 장애자에게 전화를 매일 걸어 동정을 목사에게 알리기도 하고, 예배에 장애자들이 참석토록 하며, 새 교인을 환영하고, 결석한 교인의 안부를 묻는 등의 일로서 봉사 한다. 사무실 업무에 익숙한 장애자는 교회의 여러 업무를 돕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뇌성마비를 앓고도 대통령이 된 루즈벨트(Roosevelt)와 청각을 상실한 베토벤(Beethoven), 헬렌 켈러(Helen Keller)등 불구를 극복하고 인류에 공헌한 승리의 사람들을 칭찬한다. 그러나 이같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도 우리 곁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교회가 지닌 인적, 재정적, 시설적 자원을 이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웅장하고 커가는 교회, 경제적인 부를 갖춘 교회는 장애인들도 자리잡을 수 있도록 편의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장애자가 낯선 사람이 아니라,바로 우리의 이웃이 되도록 신자들에게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3.교회와 장애인 복지


  UN에서 추정하는 장애인의 인구가  전세계인구의 10 %가 된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했다.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최근에 심신장애자의 수는 약 92 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자의 문제는 어느 사회나 몇 가지 문제와 양상을 보이는데, 능률과 합리성을 원칙으로 운용되는 현대의 산업 사회가  인적 구성에 있어서 장애자에게 특혜를 부여하기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장애인은 사회적인 편견과 냉대, 불평등한 취급, 고용의 외면등 환경적 부당한 처분과 이로 인한 개인적 빈곤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장애인의 치료.교육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가족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경우는 빈곤가정은 체념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둘째로 장애인의 특수사정과 사회적인 소외로 인한 불리한 입장은, 그들에게 평생의 어려움과 빈곤과 씨름을 하게 한다. 그들의 생활은 이것으로 인해 의존적이며 독자적인 생활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셋째로 장애인의 문제는 사회정치상의 문제가 된다. 국가 발전의 전략과  발전에서 장애자의 문제를 제외시켜온 결과, 장애자의 문제는 개인문제이거나, 자선 단체의 문제로 간주되에 왔다. 때문에 심신 장애자의 문제는 오늘날 사회가 안고 있는 중요한 사회문제 중의 하나가 되어있다.
  장애인 복지라는 것은 ‘장애자를 위한 각종의 재활 및 보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설립된 시설, 병원, 연구기관, 전문요원, 사회정책’등을 말한다. 이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장애자의 바림직한 이념이나 목표의 정립과 관련되는 것으로써, 장애자들도 동등한 인권을 가진 사회의 구성원이라
는 올바른 장애자관을 확립하고 인격체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는 복지정책, 제도, 원조활동, 교육, 의료등을 포함한 사회정책의 체제를 의미하는 실제적 개념이다. 즉 장애자 복지란 ‘국가와 사회적 수준에서 장애자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하며, 정상인과 같은 삶의 질적인 향상의 혜택을 받도록 하기위한 복지의 실제의 측면’
을 포함한다. 이러한 장애인 복지는, 먼저 사회적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과, 장애인 복지는 장애자의 인간으로서의 요구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전제로 하여 교회의 장애인 복지는 논의 되어야 한다.
 
   장애자 복지의 일반적 개념에 비추어서 교회의 장애인 복지에 대한 태도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이라는 단계를 넘어,보다 적극적인 인간으로서의 자기 실현의 기회를 보장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애자의 잠재 능력을 키워 자기 역할의 수행을 갖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애자의 인간다운 삶에 방해가 되는 사회적 장애물을 스스로 제거하여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1)올바른 장애자관의 확립
  교회에서는 먼저 장애자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여 올바른 장애자관을 확립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은  어떻게 보면 무지에서 비롯된다.장애인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 하는지, 일반인과는 어떻게 다른지 모른체 무턱대고 장애자를 동정하는가 하면 괄시하거나 무시한다. 교회는 장애자의 이해를 위한 교회,선교,교육의 재평가와 교회의 건물 구조와 설비의 개조등을 실시하므로, 신앙공동체으로서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또한 장애인 선교의 비전문성에서 탈피해야  한다.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도와주어야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그들에게 구호품을 전해주는 것은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장애인 개인에게도 지속적인 구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교회가 장애인 선교를 하려면 보다 훈련된 전문인이 필요하다. 여러 종류의 특수인들을 이해하고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인이 교회에도 있어야 한다. 이들에 의해서, 장애인의 열등감,의존성,소외  의식,은폐 의식등의 소극적이고 자기 부정적 성격과 그로 인한 사회 부적응의 성향을 제거하는,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프로그램을 위해서 교회는 사회 사업가나, 임상병리학자, 상담자, 정신과 의사, 장애자 복지 전문가 등의 협조와 원조도 필요하다.

  (2)봉사자의 양성 및 교육 또한 교회는 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한 목회자와 교인의 교육과 봉사 활동이 필요
하다. 교회의 봉사라 함은 교회의 성서 연구나, 예배에서 얻은 내적 생활의 모습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부자유자와 정상인이 함께 구성된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은 참된 의미에서의 교회 선교의 정확한 모습이다. 봉사의 훈련을 받은 교회는 즉각 봉사를 하게 되는, 이러한 자원 봉사의 최초의 전형적 형태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에 의해서 헌납된 헌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교인은 헌금뿐 아니라, 자신의 전문 지식을 통해 봉사와 행정, 가르치는 일, 그밖의 여러 일들을 맡아서 하고 있다. 봉사는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의 실체이며 사회적 표현이고, 피할 수 없는 교회 책임이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교인에게 장애자를 돕고자 하는 강한 동기(Motivation)를 불어 넣어야 한다. 성경 공부와 설교, 기도와 훈련 등을 통해 신앙적 차원에서 동기 개발을 하여야 한다. 장애자 가정을 방문하며 그들의 가족이 헌신하는 현장에 교인을 노출 시키므로 편견을 제거하고,봉사의 이념과 가치를 고취하며 장애인 선교가 교회 사업의 중요한 요소로 채택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봉사의 동기를 뒷받침할 능력을 교회는 키워야 한다. 조직적인 훈련이 이론과 기술 면에서 이루어 져야 하는데 이것은 목회자, 또 교회안의 혹은 밖의 전문인을 통해서 실시 할 수 있다. 한국의 몇몇 대형 교회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 부서를 두고 있는 경우를 이미 살펴 보았다. 교단적 차원에서도 장로교 예장 통합 측에서는 총회안에 특수 전도부를 두고 있다.
  셋째로는 봉사의 기회(Opportunity)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 동기는 강해지고 봉사할 기회는 넓어진다. 우선 교회의 교인들은 지역 사회의 장애자 실태를 정확히 알고 장애자 시설과 장애자를 가진 가정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전문적 봉사요원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면서 봉사의 종류와 시기 및  봉사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일시적이 아닌 계속적인 관계와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인 봉사 활동이 유지 되어야 한다. 전문가나,목회자의 지도를 받으며 신앙적 차원에서 교회 자체가 봉사의 주체가 되어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3)장애자 수용에 대한 교회의 태도
  뚜렷한 복지 철학에 입각한 장애인들을 위하는 노력이 교회에 있어야  한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버스를 타려면 훌쩍 떠나 버리고, 택시들은 지나쳐 버리며, 휠체어를 타고 길을 건너려면 보도 블록이 높아 건널 수 없고, 지하철은 아예 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공중변소엔 아예 드나들지를  못하며,공중전화는 높고 좁아 사용할  수가 없다. 안내인이 없는 맹인이 길을 가면 손을 잡아주는 사람 없고, 청각장애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길을 피해 버린다.이것이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이였다. 여러 부류의  모든 사람이 드나들어야 하는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의 구조는 사회 구석 구석의 사람뿐 아니라 사회적 개인적 그리고 문화적 관심밖의 영역에 사는 사람이라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개조 되어야 한다. 특수 계층의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서면 따뜻한 관심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은 교회 건축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므로, 신체 장애자로 하여금 교회 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도록 전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는 대부분 계단들이 많이 있어서 휠체어 사용자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 시각 장애자 등에게 타협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되어 왔다.미국의 루터교회(Lutherian Church)는 장애자들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교회 건물을 설계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시킨다. 최근의 한국 교회 건축에도 이런 것이 도입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일리노이의 한 교회는 화장실을 개조하여 어느 부류의 장애자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펜실바니아주의 실로(Shiloh)연합 그리스도의 교회는 노인과 목발 사용자가 많으므로 교회에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일리노이 빌라 공원 교회는 경사길 시설을 함으로 장애자들이  예배당과 교육관, 사무실등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있도록 하였다. 록킹햄 교회는 신체 부자유자를  위한 주차 장소를 정해 놓고 교회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경사길을  연결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600여개가 넘는 미국 교회들이 장애인을 위한 교회의 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은,교회를 위하는 선교이든, 장애인을 위하는 선교이든, 교회  식구를 받아 들이는 힘을 가지고 응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시각 장애자를 위해서 교회의 본당안과 교육관 안에 적절한 빛이 들어와 반사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교육관을 특별히 조용한 곳을 택하든지 방음 시설을 하고, 점자 도서관 시설을  갖추고,휴게 시설을 갖추는 것도,  청각 장애자를 위해 수화 통역 시설과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시각교육 설비를 갖추는 것도 교회가 장애자를 수용한다는 피상적인 말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포용의 응답이 라고 할 수 있다.

  4. 교회와 장애인 교육


  장애인의 특수 교육은 그들의 "잠재 능력을 최대 한도로 발휘케 하여 사회 생활에 도움을 주는 교육 제도, 방법, 기술등을 총칭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교육의 대상자는 1989년 현재 전체 학력 인구중의 7,16 %인 734,530 명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도 일반 학생과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없어 특수 학교나 특수 학급에서 교육
을 받아야  하는 학생은 210,288명으로 특수교육 대상자의 28.6 %에  달한다.그러나, 1989년 4월 현재  운영되는 특수 학교는 80개교 958 학급으로 교육을 받는 학생수는 26,605명밖에 되지 아니한다.실제로 교육을 받는 학생은 교육 대상의 12.7%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특수 학교 중에서도 중등 과정 설치 학교는 49 %인 40
개교,고등과정 설치는 21%인 17 개교에 불과하다.이것은 대체적으로 국가적차원에서 장애자 수용시설이 부족  하다는 것과 조기 교육 과정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복지의  허점을 극복 하고자 하는 몇몇 교회의 활동을 살펴본다.

  종로구 사직동의 수도 교회는 1985년부터 장애 아동을 위한 조기 교육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장애아를 초청해서 위로 프로그램과 여름 캠프를  실시 했으나, 장애자 문제의 현실적 접근이 어려움을 깨달은 정진우 목사는 교회앞에 가정집을 구입해서 조기 교육실을 꾸미게 된다.3세이후부터 취학 전까지의 정신지체아동과,자폐 아동,학습장애 아동을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담임 목회자와 2명의 교사가 운영하고, 여전도회의 자원 봉사자들이 번갈아가며 교육을 도와준다. 여기서는 장애아의 부모를 위해서도 교육이 한달에 두번씩 실시 되는데, 이것은 장애아들에게도 정상아와 마찬가지로  조기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애아를 특수 교육 시설로 보내는 것은 빠르면 빠를 수록 장애 극복을 위해 유리하다.이것은 교육의 시기를 놓지므로 재활의 길을 막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 중부 교회 최성묵 목사의 “한울 장애 어린이의 집”은 만 4세부터 6세 까지의 정신 지체아, 자폐아를 포함한 정서 장애아와 뇌성마비 아동을 조기 교육  시키는 곳이다. 1985년부터 장애인 컴퓨터 교육을 시작한 후 이것이 일정 궤도에 오르자, 일본 한국청년상공회의소의 기금과 교회 선교 기금으로 시작한 조기 교육실에서는, 생활실, 놀이실, 개인  학습실, 사무실등으로 방을 꾸미고, 배변과 옷입고 벗기, 손씻기, 양치질 및 식사, 놀이기구를 통한 운동기능 개발과, 언어 훈련 및 취학 준비 학습을 지도하고 있다.
 
  농아 교육도 16세기의 수도사 Pedro Ponce de Lean(1520-1584)에 의해 농아 개인교수법이 최초로 실시되면서 시작 되었고, 중세 맹인 교육의 시작도 기독교의 승려중심으로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다. 장애자들은 현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점점 더 늘어가는 추세이다. 그러나,극히 제한된 숫자의 장애인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교육을 받을 기회도 부여 받지 못한 채 무능력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특수교육은 전문성과 많은 재정적 투자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교회는 이것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봉사센터로서 자그만 특수교회교육을 실시해야한다. 교회내에 장애자를 위한 조기 교육실과 유치원시설을 갖추고 장애인 교육를 위해 여력을 쏟는 것은 그 역할을 다하는 긍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5.교회와 장애인 재활

  재활이란 ‘장애자의 잠재 능력을 개발 시키며 장애를 극복하여 자립적 활동을 하게끔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심신 장애자에게 의료적, 사회적, 교육적, 직업적 재훈련을 통합적 협동적으로 실시함으로서 장애자가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교회의 교육적 역할에서 재활적 교육을 이미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의료적 재활과, 직업적 재활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살펴본다.

  의료와 직업의 재활 활동 분야는 전문성이 요구 되므로 교회의 역할은 피상적이고,방관자적인 면이 있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의 지속적인 치유사업의 본을 이어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보이고, 힘이 닿지 않을 때에는 전문 치료,교육 기관에 위탁을 해서라도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1)의료적 재활
  장애자 및 장애자 부모는  신앙에 접목된 장애 극복을 위한 재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의 장애로부터  아픔을 극복하며 이것이 더 커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며 더 나아질 가능성을 위해서  의료적 재활은 기본적인  것이다.의료적 재활은 내,외과적 치료로 환자의 잠재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과,물리적 심리적 수단을 이용 보충적으로 치료에 병용하는 의료 조치로 볼 수 있다.
  교회에서의 의료 재활은 의료 선교 활동이다.장애인의 의료 재활은 의사  뿐만 아니라 장애인 본인과,가족,목사와 교인의 협동적 사업이 되어야한다.사회에서  의료 재활을 위해  의사와 직업 상담자,심리학자,사회 사업가가 협동적인 재활에  힘쓰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교회의 신도들은 참된 의료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그들
은 심령과 육체의 두가지 필요에 따라 봉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직  하나님이 치료를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알게 하여야 한다. 마음과 육체가 병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시는 분을 바라 보아야 한다. 

  또한 장애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방 의학적 활동의 강화가 필요하다. 전반부에서 장애아가 탄생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예방 의학적 활동으로 충분히 장애아의 숫자를 줄일 수 있다.또한 교회의 종합병원등에서는 재활의학과가 설치되어 장애 발생의 예방과, 조기발견, 진단등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 근무하는 그리스도인 의사나 간호사는 환자들의 회복을 위하여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므로 괴로움과 고통에 지친 몸들을  위대하신 치료자의 손에 두도록  그들을 도와야 한다. 교회는 치료자요 상담자인  하나님과 협력하여  장애인의 의료 재활에 힘써야  한다.하나님이 개인적 의무로  교회에 맡긴 사업을 자선 기관에 넘기거나,행정기관에 책임을 돌려서는 안된다.

  (2)직업적 재활
  신체 장애자도 적당한 직업을 갖고 활동하면서 자기의 기능과 취미를 살리고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재활원에서는 저급한 수준의 재활을 실시 하는데 그치고 있다. 지체 장애인 수용 시설이  33군데,정신지체아 수용시설이 41 군데, 중증요양원이 30 군데 등으로  집계되고 있으나, 근로 능력을 되살리기 위한 시설을 한 곳은 6곳 밖에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의 취업을 늘리는 일에 교회와 사회는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사회 복지  법인과 재단 법인 등에서 직업 보도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대부분 영세적이며, 그 중 5곳 만이 전문 직업 훈련원의 형태로 직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훈련 받은 장애인의 취업실태를 보면 1982년에서 1984년까지 806명에 불과하다.

  현재 장애인 고용 촉진 법에 따라 3백인 이상 근로업체가 장애인을 수용하면 2만 1천여 명이 취업해 있어야 하나 실제로눈 그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9천  1백 27명만이 취업해 있을  뿐이다.직업 재활의 근본적 장벽은 편견과 차별을  인습화 시켜온 사회 의식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시혜나 구제활동,자선등의 차원이  복지와 재활이 되어서는 안된다. 장애자도 경제 활동에 완전히 참여해 일반인과 동일한 삶을 향유할 의무를 가진다.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총체적 사회 환경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무를 교회와 사회는 짊어져야 한다.교회는 인간답게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든 장애자의  현실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신체 장애자가 소외당하지 않고 다함께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야한다.

  장애자들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이 실현되기 위하여 현실과 직결된 문제는 경제력의 문제이며,이것의 해결은  그들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는 일이다. 원활한 취업과, 생계유지를 위한 임금 보장, 승급 기회의 평등, 부당해고의 위험 해소등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성에 맞는 직종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제공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교회는 그들을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노력해야 하며,필요에 따라서는 일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일례로 부산의 “한울 장애자  자활 센터”에서는 컴퓨터를 통한 장애인 자활의 기반을 닦아가고 있다. 지난 6년동안 40여명의 프로그래머를 배출하였고 그 중에는 정보처리사및 정보처리 기능사의 자격까지 취득하도록 해서, 연금 관리 공단이나, 도서관 데이타 관리,컴퓨터 학원 강사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분야에 취업토록  하
고 있다. 과거의 직업 재활 교육은 양재나  목각,금은세공,공예,인쇄,선반,용접,제화,수예,목공,철공,한복등 적성과는 상관  없이 주어진 기술을 배웠고, 또  배운다해도 모두가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였다. 생산적이며 능률적인 첨단  기술에 맞는 부단히  연구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겠지만,부산  중부 교회의 이같은  직업
재활 노력은 교회가 이런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장애인 선교의 실천적 과재로서는 직업 재활 교육뿐만이 아니라, 장애자 자신의 의식 구조개혁 및 사회전반에 걸쳐서 잘못된 구조의 개선과 의식의 개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것과 유기적 관계속에서 장애인의 취업및 생활대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의  여러 조직들 가운데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혼자가 아니다. 복음을 증거하며 사회를 돌보는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사업을 위한 조력자는 교회안에서나, 밖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계획속에서 장애인 선교를 추진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가운데에 도움을 얻을 여러 사람과 단체들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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