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 : 충무후
작위 : 무향후, 무흥왕
최종직위 : 승상겸 녹상서사 겸 가절 영 사례교위 겸 익주목 겸 개부치사
본관 : 낭양제갈씨
명 : 량
자 : 공명
신장 : 189.6cm
아버지 : 제갈규
생물연도 : 181년 ~ 234년 10월 8일
고향 : 서주 낭야국 양도현
사망지 : 오장원
제갈량은 상국(相國)이 되어 백성을 어루만지고 예법을 보였으며, 관직을 간략히 하여 권제(權制)에 따르고, 성심을 열어 공도(公道)를 베풀었다. 충성을 다하고 보탬이 된 자는 비록 원수라도 반드시 상주고, 법을 어기고 태만한 자는 비록 친한 자라도 반드시 벌주었다.
죄를 인정하고 실토한 자는 비록 중죄라도 반드시 풀어주고, 헛된 말로 교묘히 꾸미는 자는 비록 가벼운 죄라도 반드시 죽였다. 선행이 작다 하여 상주지 않는 일이 없고, 악행이 작다 하여 문책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모든 일을 정련(精練)히 하여 그 근본을 다스리고, 명분과 실질이 서로 부합하게 했으며, 헛된 것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마침내 나라 안 모든 이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경애하고, 비록 형정(刑政)이 준엄했으나 원망하는 자가 없었으니, 이는 그 마음이 공평하며, 권하고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가히 다스림의 법도를 아는 빼어난 인재로 관중, 소하에 버금갔다.
국 궁 진 력 사 이 후 이
목숨 바쳐 앞으로 나아가고 죽은 후에야 멈춰서리라.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자 삼국시대 촉한의 재상. 자는 공명(孔明), 작위는 무향후(武鄕侯), 시호는 충무(忠武). 와룡 또는 복룡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형주에 머물다 유비를 따르기 시작했으며, 이후 유비 세력의 대전략과 내정을 담당하였다. 촉한이 건국되자 초대 승상 직위에 임명되었고, 유비 사후에는 군권을 포함해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위치에 올랐다. 이엄의 실각 이후 한중에 막부를 두며 국가의 중요한 사안을 모두 결정했다.
탁월한 능력과 성실함 뿐 아니라 높은 충성심으로 사후에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훌륭한 신하이자 재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소설《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군사 또는 참모의 대명사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삼고초려, 수어지교, 출사표, 난공불락, 칠종칠금, 읍참마속 등 현대에도 전해지는 여러 고사성어의 유래와 깊이 관련된 인물이기도 하다.
평소에 일반인들이 수양[修養]의 문제를 말할때면 영정치원 담박명지 [寧靜致遠.澹泊明志]라는 구절을 흔치않게 인용한다. 이는 제갈량이54세 때 8세된 그의 아들 제갈 첨에게 학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훈계하는 편지속에서 한말이다.
이 제갈량의 계자서 한편의 편지글로도 제갈량의 유가사상수양의 경지를 비견키 어려운 것으로 후세의 동양사상가 거대분이 제갈량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君子之行]군자지행 /군자의 행위는
靜以修身]정이수신/ 고요한 마음으로 몸을 닦고
儉以養德]검이양덕 /검소함으로 덕을 기르는 것이다.
非澹泊無以明志]비담박무이명지/ 마음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非寧靜無以致遠]비녕정무이치원 /안정되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이룰 수 없다.
夫學須靜也]부학수정야/ 모름지기 배움에는 반드시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며
才須學也]재수학야/ 재능은 반드시 배움을 필요로 한다.
非學無以廣才]비학무이광재/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非靜無以成學]비정무이성학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慆慢則不能硏精]도만칙불능연정 / 방자하고 오만하면 정밀하게 연마할 수 없고
險躁則不能理性]험조칙불능이성 /조급하고 경망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年與時馳[연여시치/ (그러는 사이에)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志與歲去[지여세거/ 의지는 세월과 더불어 사라지면서
遂成枯落[수성고락/ 마침내 가을날 초목처럼 시들어 갈 것이다.
悲嘆窮廬[비탄궁려 / 곤궁한 오두막집에서 슬퍼하고 탄식해 본들
將復何及也[장부하급야/ 그때서야 어찌 돌이킬 수 있을 것인가?
제갈량은 후한 말 형주의 사족이자 소열제 유비의 신하, 그리고 촉한의 승상이다. 형주를 아직 유표가 다스리던 무렵, 그의 아래에서 힘을 모으던 유비에게 기용되었다. 이에 얽힌 사자성어로 삼고초려가 전해진다.
유종이 항복하고 조조군이 남하하자 유비는 하구까지 피난했는데, 제갈량은 하구에서 노숙을 따라 손권에게 사자로 파견되어 동맹을 체결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유비 세력의 일원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적벽대전과 뒤이은 남군 공방전이 마무리되고 유비가 손권에게서 형주를 빌리자, 형주의 여러 군을 맡아 군대를 보급하였다. 유비가 익주로 향했을 때 처음에는 형주에 머물렀고, 익주에서의 전쟁이 격해지자 장비와 함께 물길을 따라 익주로 향하며 현들을 정복했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제갈량 최초의 군사활동이나, 여기에 그가 얼마나 관여하였는지, 구체적인 전개가 어땠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유비가 무리한 원정으로 신생 국가인 촉의 국력을 소진시킨 후, 유비는 자신의 후계자인 유선을 보좌할 보정대신으로 이엄과 제갈량을 두었다. 행정권은 제갈량에게, 군권은 이엄에게 맡김으로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수행하였으나, 이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유비 사후 제갈량은 손오와 군사동맹을 회복한 뒤 남만에서의 반란 진압을 근거로 군권을 장악하였으며 남만 전체에 간접적인 복속만을 받은 채로 돌아와 북벌에 매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제갈량은 촉의 행정, 인사, 군권, 상벌을 모두 장악한 상태였으며, 자신이 대규모 원정을 입안, 실행하였다. 같은 보정대신이었던 이엄을 탄핵한 제갈량은 명실상부한 촉 정계의 일인자가 되어 북벌을 주도하였다. 제갈량의 집권 기간 동안 그의 막부가 머무르는 한중은 촉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으며, 신하임에도 후임을 지목할 수 있었고 후임자로 지목된 장완과 비의 역시 한중에서 촉 전체를 통치해나갔다. 비의 대까지 제갈량의 정치적 후계자들은 촉한의 전권을 행사했으며, 이는 진지와 황호가 집권한 시기에 들어서야 막을 내렸다.
제갈량의 북벌은 대체로 과단성보다 견실함을 중요시했다. 이러한 방향성은 천수가 호응하였으나 느린 행보로 인하여 좌절된 1차 원정에서 보이듯 공세적인 원정의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게 하는 한편,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병력을 온존할 수 있게 하였다. 제갈량이 주도한 북벌은 명백한 한계를 맞이했다. 그는 북벌에 뒤따르는 보급 문제를 결코 극복할 수 없었으며 이는 제갈량 개인이나 촉한이라는 시스템의 문제 이전에 전근대 보급 체계의 한계였다. 결국 제갈량은 5차 원정 도중 진중에서 사망하였다.
제갈량은 사후, 촉한 2대 황제 유선에 의해 충무후로 봉해진다. 사후에 미화가 진행되었으며 당대 기록에서도 단편적으로 확인된다. 남만이라 불리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남조는 자신들의 통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제갈량을 신격화했는데, 현재에도 남만 일대에서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는 과장된 전승들이 전해져 내려오며, 연구자들은 이를 남조 대에 이뤄진 의도적 신격화의 영향으로 본다.[6] 사후 남송 대에 이르러 제갈량은 그의 군주인 유비와 함께 강하게 신격화되었고, 원 대의 삼국지평화, 명 대의 삼국지연의를 거쳐 현대에까지 통용되는 제갈량의 이미지가 확립되었다.
현대 동아시아에서 제갈량은 강력한 문화적 상징이다. 그가 지나친 장소들, 혹은 신빙성이 거의 없는 민간전승조차 다양한 문화 상품으로 개발되어 판매된다. 한 편으로, 현대 역사가들은 오랜 기간동안 신격화된 제갈량의 이미지를 객관적인 연구를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예컨데 라프 데 크레스피그니는 제갈량의 남방 정책이 실질적인 개발로 이뤄지지 못해 국력을 신장시키지 못했음을 지적하였고, 존 킬리그루(John Killigrew)는 제갈량의 북벌을 다룬 논문에서 전반적인 군사적 능력을 비판하며, 그가 불필요한 전쟁을 유지하였고 원정 전반에 어떠한 중대한 정치적 혹은 군사적 성공도 거두지 못했음에도 비운의 영웅으로 포장되었다고 평가했다.[7] "케임브리지 중국사" 의 촉 파트를 저술한 마이클 파머(J. Michael Farmer)는 지나친 제갈량 고평가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비판했다. 통사 레벨을 벗어나 현대 중국 주류 사학계의 논문을 봐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중국 사학계에서는 제갈량의 북벌에 회의적인 의견이 정설로 인정되며, 이제는 되려 제갈량의 북벌과 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논문이 스스로를 주류 사학에 도전한다고 평가할 정도이다.
민간전승에서 제갈량은 몇몇 발명품, 혹은 음식의 시초로 전해진다. 그중에 제갈량의 발명품 가운데 사료적으로 근거가 확실한 것은 제갈노, 목우, 유마이다. 제갈노는 기존 연노의 개량품으로 간주되나 정확한 실물은 전하지 않아 개량의 수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없고, 목우와 유마는 현대 학계에서 외바퀴 수레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외바퀴 수레와 연노는 촉에 앞서 한 왕조에서 이미 실존했다는 고고학적 근거가 나타나므로, 이들 역시 엄밀히는 발명이 아니라 개량에 가까우며, 정확한 실체는 전하지 않는다. 목우, 유마는 진령산맥이라는 자연경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원활한 보급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만들어졌다는 기록 바로 다음에 보급 부족이 적힌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근본적인 보급 문제 해결은 불가능했고, 이는 전근대 육로 보급의 한계를 생각해볼 때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보인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제갈량을 평하는 글에서 그가 상국(相國)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고 썼다. 상국이란 나라의 재상을 일컫는데, 승상의 다른 이름이다.[8] 《계한보신찬》에는 제갈량이 선제(유비)의 유명을 받아 재상이 되었다고 나오는데, 이 시기 제갈량은 이미 승상이었으므로 명목상 내지 명예직으로 한 단계 더 윗 자리인 상국에 올랐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후한서 백관지와 진서 직관지 모두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설이다. 후한서 백관지에 따르면 승상과 대사도, 상국은 모두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직위였고, 이는 진까지 이어진다.
제갈량의 사상에 대해서 유가라든가 법가라든가 하는 등의 다양한 평론이 현대에 많이 있는데, 제갈량이 제자백가를 논한 글은 제갈량집의 집본에 남아있어서 제자백가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는 제갈량 본인이 제자백가를 보는 관점이고, 현대인이 제갈량의 사상을 평가하는 관점은 이와 다를 수 있다.노는 양생에는 뛰어났으나 위험과 재난에 대처하지 못했다. 상앙은 법치에 능했으나 백성을 교화하지 못했다. 소진과 장의는 말재간이 뛰어났으나 쌍방이 동맹을 맺도록 하지 못했다. 백기는 성을 치고 점령하는데는 능했으나 대중을 너그럽게 포섭하지 못했다. 오자서는 적을 막는 계책을 꾸미는 데는 뛰어났지만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지 못했다. 미생은 신용을 지켰으나 변화에 부응할 줄 몰랐다. 왕가는 성군을 받들어 모시는 데는 능했으나 어리석은 황제를 위해 처사할 줄은 몰랐다. 허자는 명망 있는 인사들의 우열을 평가하는데는 능했으나 인재를 양성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사람들의 좋은 점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여명협 교수는 저서 《제갈량 평전》에서 이글, 「논제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제갈량이 지은 글인) 「논제자」는 선진 시대 대표적 학문이었던 유가와 묵가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순자』의 「해폐편(解蔽篇)」은 유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나 묵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다. 제갈량이 유가와 묵가에 대해 논평하지 않은 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여기서 그의 사상적 경향이 드러난다. 그는 시와 예를 중시하는 가정에서 자라나 배우기 시작하면서 형주의 많은 명유 석학에게 가르침을 받았기에 그가 유학을 숭상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묵가의 절용(節用)과 절장(節葬) 및 과학기술에 대한 중시 경향도 제갈량이 높이 쳤다. 이처럼 그가 유가와 묵가를 학문의 으뜸으로 쳤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논평을 하지 않은 듯하다.
...........제갈량은 유학을 으뜸으로 삼았지만, 공자 · 맹자 · 순자 중 그 사상은 뚜렷이 순자에 기울었다. 「논제자」 중 직접 『순자』의 「해폐편」을 본받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순자』「군도편君道篇」에서는, "몸을 닦으면 나라가 다스려진다"고 했는데, 제갈량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몸을 닦는 것과 같다"고 했다. 또 『순자』 「성상편成相篇」에는, "다스림의 핵심은 예와 형이다"라고 했는데, 제갈량 역시 나라를 다스리는 데 덕과 형벌을 동시에 중시했다. 『순자』 「왕제편王制篇」에는, "칭찬과 상으로써 힘쓰도록 하고, 형벌로써 징계한다"고 했는데, 제갈량은 상벌을 엄격하고 밝게 할 것을 강조했다. 주지하다시피 순자는 유가학파 중에서도 가장 법가에 접근한 사상가다. 이 때문에 그의 제자 한비와 이사는 모두 법가의 대표적 사상가가 되었다. 제갈량 역시 법치를 숭상했으니 학술사상 방면에서의 사승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여명협, 《제갈량 평전》, 600p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부군자지행, 정이수신, 검이양덕.
무릇 군자는 행함에 지조가 있어야 하나니, 욕심 없는 평온한 마음으로 몸을 닦아야 하고, 근검과 절약으로 인품과 덕성을 길러야 한다.
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비담박무이명지, 비녕정무이치원.
담박하지 않은 마음으로는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밝힐 수 없고, 바깥 것에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원대한 목표에 이를 수 없다.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非學無以廣才, 非志無以成學.
부학수정야, 재수학야, 비학무이광재, 비지무이성학.
배울 때는 고요한 마음을 유지해야 배울 수 있는데, 배움 없이 재능을 키울 수 없고, 뜻한 바 없이 이뤄지는 배움도 없다.
慆慢則不能勵精, 險躁則不能冶性.
도만즉불능여정, 험조즉불능야성.
거리끼는 것이 없고 게을러서는 정신을 진작할 수 없고, 조급하고 위험스러워서는 마음을 기르고 닦을 수 없다.
年與時馳, 意與日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守窮廬, 將復何及!
연여시치, 의여일거, 수성고락, 다부접세, 비수궁려, 장부하급!
세월은 시간 따라 나는 듯이 달려가고, 의지도 세월 따라 흘러가는데, 시들어 지고 말면 세상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못한 채, 슬프게 부서진 집이나 지키고 있게 될 테니, 그때 가서 후회와 원망을 어찌 감당하겠느냐!
《계자서》(誡子書)
한편《무후사, 그 안에서 본 삼국지》(신아사, 2017)의 50번째 챕터와《제갈량 평전》은 제갈량의 계자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여명협 교수에 따르면 담박과 영정이라는 어휘는 비록 단어는 달라도 고요함을 위주로 하는 도교 사상과 같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만물을 고요히 관찰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생각해 냉정하게 처세하는 마음의 자세를 반영했다는 청정무위의 수신원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11]
삼국지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적벽대전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드라마적으로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가 많은 부분이다. 역사적으로는 진짜 삼국지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전 이야기는 영웅호걸의 쟁패전이자 삼국 탄생 전초전에 불과하다. 적벽대전 이후 삼국 탄생과 진짜 전쟁의 길이 열린다.
절정을 이루는 소설 속의 장면으로 들어가보자.
80만 대군을 휘젓는 조운의 무용담부터, 기도로 동남풍을 부르는 제갈량의 모습이 감탄을 부른다. 또 온갖 전략과 책략이 쏟아진다. 짚단으로 감싼 배를 동원해 조조군 진영 앞에 출몰해서 화살 10만개를 거둬 오는 제갈량의 계략, 어릴 적 친구를 빌미로 주유를 찾아온 조조의 스파이 장간, 장간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를 역이용해 조조를 속여 형주 출신의 수군 장수 채모와 장윤을 처형하는 반간계, 황개의 고육계와 거짓 항복 그리고 황개의 화공 등 장면은 삼국지연의의 백미다.
적벽대전이 끝난 후에도 명장면을 양산한다. 패전한 조조가 도망치다 제갈량이 안배해둔 유비군 매복에 계속 걸리는 장면, 마지막에 관우를 만나 죽음의 위기를 맞지만 의리의 사나이 관우가 살려 보내는 화용도 이야기 등 익숙한 일화가 많다.
그러나 적벽대전을 장식하는 이 빛나는 에피소드들은 다 허구다. 그나마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면 적벽에서 도망치던 조조가 숲에서 쉬다 “나라면 이곳에 매복을 뒀을 것이다”라고 큰소리를 치는 장면이다. 역사가 배송지가 쓴 ‘삼국지 주석’에서 등장한다.
연의의 무수한 허구 중에서도 가장 큰 거짓말은 조조에게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려는 오나라를 제갈량이 격분시켜 싸움으로 끌어냈다는 이야기다.
유비가 조조의 추격에서 탈출하고 세력을 수습한 뒤 제갈량이 손권에게 사신으로 간 것은 사실이다. 이때 제갈량은 손권과 소설에도 소개된 유명한 문답을 한다.
제갈량은 손권에게 “조조는 강력한 군대를 데리고 있다. 손권은 항복하든지, 싸우든지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고 얘기한다. 조조에게 복종하는 척하면서 군대는 동원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10만 대군을 갖고 있는 손권에게 제갈량은 “당신이 유리하다. 싸우면 이긴다”고 말하지 않았다. 은근히 그런 대답을 기대했던 손권은 기분이 상했다. 자신에게 투항하든지, 싸우든지 하라고 권한다면 겨우 패잔병 1만을 거느린 유비는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는가? 그래서 손권은 이렇게 물었다. “나더러 태도를 빨리 정하라고 한다면 (형편없는 병력을 지닌) 유비는 왜 조조에게 투항하지 않습니까?”
제갈량이 대답했다.
“유예주(유비)는 왕실의 후예로 걸출한 재능이 세상을 덮고, 많은 선비가 우러러 흠모함이 마치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만일 일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것은 곧 하늘의 뜻일 뿐, 어찌 다시 조조의 신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유명한 제갈량의 빈정거림은 삼국지의 명대사다. ‘황실 후손인 유비와 당신(손권)이 격이 같느냐’는 말로 해석되고는 한다. 콤플렉스가 발동한 손권이 나도 싸우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소설과 달리 이때 손권은 이미 싸울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당시 손권의 각오와 생각은 오서에 충분히 설명돼 있다.
손권이 망설이는 척한 이유는 외교 석상에서 제갈량에게 진심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의 말은 손권을 격분시켰다. 제갈량의 말속에 숨은 진짜 메시지는 ‘황제를 꿈꾸는 사람답게 행동하라’였다.
“당신이 대권을 꿈꾼다면 대권을 꿈꾸는 사람답게 행동해라. 유비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제갈량의 말속에 숨은 또 한 가지 암시는 유비가 조조와 목숨을 걸고 결전을 벌일 각오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유비의 꿈은 몸보신이나 출세가 아니다. 통일 중국을 다스리는 황제다. 그러니 조조와 끝까지 싸운다. 이 내용이 제갈량이 전달한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당시 손권은 유비의 확고한 결단을 원했다. 과거 유비는 원소, 조조 사이를 여러 번 오가며 ‘박쥐’짓을 한 전과가 있다. 만약 유비가 오나라와의 연합을 배신하고 조조 편에 붙어버리면 오나라 군대는 한 번에 패망이다.
유비를 향한 의심을 제갈량은 한마디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손권은 유비와 손을 잡고 동맹을 만든다. 이것이 제갈량의 진짜 공로다. 유비 휘하의 장수 관우, 장비에게 없는 능력인 ‘외교술’을 제갈량은 갖고 있었다.
▶전쟁 준비에 숨 가쁜 오나라
▷‘대권’ 도전 손권 마침내 일어서다
제갈량이 오기 전에 오나라 조정에서 조조와 싸우겠다는 결의가 확고했던 인물이 세 명이 있었다. 손권과 노숙, 주유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목표가 정상이라는 것이다. 손권은 대권을 원했고 주유와 노숙은 시대의 흐름이 통일 왕조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의 봉건제 혹은 남북으로 분리된 왕국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황건적의 난으로 군웅할거 시대가 시작됐지만, 결국 세상은 한 명의 승자만을 요구할 것이다.
과거 조조가 원소와 전쟁 중일 때는 얼마든지 복종하고 참을 수 있었다. 평화를 얻고, 평화의 그늘 아래서 군과 국력을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는 달랐다. 조조는 황제의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다. 화북을 통일하고, 중원의 형주를 단번에 삼켰다. 그런 그가 오나라를 이 상태로 놔둘 리가 없다. 승리든 패배든 결전의 시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오나라 관료와 토호들은 생각이 같지 않았다. 그들은 주인이 누가 되든 상관이 없었다. 이전 한나라도 오나라 지방에는 자치권을 인정해줬다. 조조 역시 자신들의 토호적 기반, 기득권을 인정하고, 현실의 지위를 인정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들(오나라 토호들)은 절대 안전하다. 조조에게 머리를 숙인다고 해도 화북인은 여기에 발을 붙이지도, 환경에 적응하지도 못한다. 강동 지방은 자치가 가능하다.”
이것이 손권이 유비와 손을 잡고, 형주의 절반 이상을 유비에게 양도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유비와 형주의 진짜 상속자인 유기와의 동맹은 오나라 안에서 안주하려고만 하는 신하들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구실이 됐다. 조조를 배신한 유비를 택하면서 오나라에는 ‘전쟁’이라는 선택지만 남게 됐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오나라 토호들도 손권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전쟁 준비는 끝났다.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둔 조조와 유비와 손권의 운명을 건 반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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