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중화상 딛고 장애인 1호 경찰관 된 이호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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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뉴스통합

손 중화상 딛고 장애인 1호 경찰관 된 이호일씨

by 정진한 2007.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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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중화상 딛고 장애인 1호 경찰관 된 이호일씨

[한국일보 2007.01.19 18:11:26]

"범죄에 매운 손 봉사엔 따뜻한 손 돼야죠"
9만5,000명이 넘는 현직 경찰관 중 딱 2명은 남다르다. 경찰은 지난해말 창설 61년 만에 장애인 경찰관(사이버범죄 수사요원) 2명을 선발했다. 그 중 한명인 이호일(30ㆍ경장 특채)씨는 군대에서 화재로 장애(국가유공자 7급)를 얻었다. 이씨는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에서 교육(4주차)을 받고 있다. 세상을 향한 그의 독백을 들어봤다.

#2000년 여름 지하철-장애는 공포다
미팅에서 만난 여자 친구가 자꾸 손을 보여달라고 한다. 심심하니 게임이나 하자고 한다. 여름에도 긴 팔 소매로 잘 숨겨왔는데 난감하다. 예뻤던 내 손은 이제 없다. 불에 타 살점이 엉켜 붙은 내 손에서 악취가 날 것 같다. “손을 뒤집어 보라니까, 이렇게.” 그녀의 하얀 손등을 보니 난 왜 사나 싶다. 불현듯 어머니(박팔임ㆍ53)의 흐느낌이 관자놀이를 짓누른다. “내 팔이라도 떼서 붙여주고 싶은데….”
흉측한 손엔 내 허벅지 살을 붙이는 피부이식 수술을 했다. 화제를 돌리느라 혼났다. 미심쩍어 하는 그녀가 미안하고 두려워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아니 사람들이 내 손을 볼까 봐 무서웠다. 그 뒤 대인기피증이 심해졌다. 아, 악몽 같은 그날만 없었다면….

#1998년 겨울 경기 포천시 1기갑여단–장애는 도둑이다
오전 차량 정비를 마치고 내무실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빼치카(벽난로)에서 불똥이 튀었다. 휘발유가 잔뜩 묻은 소매에 불이 붙었다. 손을 웅크리고 엎드렸더니 불이 온몸으로 번졌다. 불은 양손이 숯 검댕이처럼 탄 뒤 꺼졌다. 풍선처럼 부푼 손엔 핏물이 배였다.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피부조직이 모두 죽은 3도 화상이었다. ‘컴퓨터가 전공인데 두 손이 망가졌으니 어찌 사나.’ 손을 아래로 내리기만 하면 피가 몰려 터질 것만 같았다. 벌 서는 것처럼 손을 들고 다녀야 했다. 아무런 감각도 없이 흉측하게 매달린 내 손이 아닌 손이 미웠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렸다. 온몸이 탈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손만 다쳤다고 여겼다. 두 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후유증은 남았지만 차츰 손에 감각이 돌아왔다.

#2007년 봄을 앞둔 중앙경찰학교-장애는 도전이다
장애와 대인기피를 극복하기 위해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다. 2004년 대학원(세종대 전산학)을 졸업하고 DNA칩을 만드는 연구소에서 일했다. 새로운 도전을 꿈꿨다. 장애인도 경찰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장애를 감추지 말고 세상에 드러내자. 내가 먼저 못난 손을 내밀어야 상대가 내 손등을 감싸주듯. 드디어 지난해말 10.5대 1의 경쟁(장애인 전형)을 뚫고 경찰 제복을 입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넓디넓은 인터넷 세상에서 해킹범죄를 수사하고 싶다. 평생 비닐봉지 만들어 자식을 키운 아버지(이성재ㆍ61)에게도 보답하고 싶다.사실 내 장애는 아주 미미하다. 더 크고 불편한 장애를 겪고 있는 이가 많다. 내가 먼저 내딛는 한 걸음이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길 소망한다.


충주=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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