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영어교사의 꿈 이룬 시각장애인 김경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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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뉴스통합

[신나는 공부]영어교사의 꿈 이룬 시각장애인 김경민 씨

by 정진한 201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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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때 시력을 잃었다. 초중고교 모두 맹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장애를 딛고 숙명여대 교육학과에 진학해 단과대학을 1등으로 졸업했다. 1급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일반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됐다. 서울 인왕중 영어교사 김경민 씨(24)의 이야기다.


김 씨의 실화 스토리가 동화책 ‘경민이의 아주 특별한 친구’로 최근 발간됐다. 이 책은 김 씨와 그를 도와준 안내견 ‘미담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담이는 김 씨가 2007년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분양받아 6년째 줄곧 함께해온 친구다. 일반인으로서도 쉽지만은 않은 길.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영어교사의 꿈을 이룬 김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 “하늘을 볼 수 있단 건 참 행복한 거야”


김 씨는 선천적으로 심한 녹내장(눈의 압력이 높아져 시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병)을 안고 태어났다. 눈앞은 마치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되기가 일쑤. 어린 나이에 스물여섯 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초등 6학년 때 실명이 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12세 어린이가 감당하기에는 한없이 무서웠다. 장애인으로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이 막막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 특히 자식 대신 ‘눈’이 돼 주어야 하는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맹학교에 다니며 배운 점자로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마음이 힘들 땐 글을 썼다. 그러면 속이 한결 시원해졌다.

“중3 때 이런 글을 썼어요. ‘내가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한지 몰랐을 것이다. 부모님의 잔소리, 앵앵대는 모기소리도 어느 청각장애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소리일 것이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 점자책으로 밤샘 공부… 대학을 수석 졸업하다

멀쩡한 눈으로도 공부는 쉽지 않다. 하물며 눈이 안 보이면 어떨까. 그러나 김 씨는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비장애인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하면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맹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 영어교사가 되고 싶었던 김 씨. 대학 진학을 위해 고교 3년간 밤늦게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점자책 수십 권을 소화했다. 읽고 싶은 참고서나 문제집은 학교에 부탁해서 점자번역을 의뢰하기도 했다. 어머니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 씨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고 녹음도 해줬다. 노력은 빛을 발했다. 맹학교에서 최상위 성적을 놓치지 않았던 김 씨는 숙명여대 교육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대학에서도 김 씨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졌다. 수업시간에 강의내용을 대신 필기해주고, 음성파일로 녹음해 전해준 친구들의 도움도 컸다. 힘들게 공부하면서도 학교 시각장애인 봉사단인 ‘숙명 점역봉사단’에서 시각장애 학생용 문제집 제작에 참여하는 등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다. 졸업장을 받는 날, 일반 학생들도 얻기 어려운 ‘수석 졸업’의 영광이 김 씨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임용고사를 단 한 번에 합격한 김 씨는 꿈에 그리던 영어교사가 됐다. 올해 2년차 교사인 그는 열정이 넘친다. 지난해에는 영어과목 수준별 수업에서 가장 낮은 반을 자원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들에게 보다 쉽고 재미있는 수업으로 영어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는 보조교사가 함께 들어와 판서 등 김 씨 혼자서는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기 때문에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은 없었다고.

그는 “처음에는 중학생들이 내 장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수업을 잘할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이다. 장애인으로서가 아닌 교사로서의 일반적인 고민을 한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 꿈을 이루게 도와준 나의 분신, 미담이

학생들에게 김 씨는 인기가 많다. 교실이나 교무실의 자기 자리에서 김 씨의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안내견 ‘미담이’ 덕이 크다. 학생들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미담이가 귀엽다며 매번 큰 관심을 보인다. 올해 새로 만난 학생들과 친해질 때도 미담이 도움을 받았다.

“학생들과 처음 만나면 어색하잖아요. 첫 시간엔 저와 미담이 소개를 같이 합니다. 미담이를 함부로 만지거나 미담이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안 된다는 등 아이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을 ‘OX 퀴즈’로 같이 풀다보면 학생들과 금방 친해져요. 부럽다는 선생님들도 계세요.(웃음)”

김 씨는 “나의 분신 미담이가 없었다면 꿈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분양받은 미담이와는 이제 감정을 교감하는 사이다. 서로 기분이 좋은지 또는 우울한지를 금세 알아챈다.

미담이는 가끔 안마해달라고 등을 들이민다. 주물러 주다가 손을 놓으면 ‘더 해달라’는 듯이 발로 툭툭 친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던 것도 항상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미담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그의 꿈은 좀더 훌륭한 교사가 되는 것. 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사례를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공부는 아무리 해도 잘 안돼’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눈이 안 보이는 저도 했는걸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어요. 용기와 도전정신을 잃지 않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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